방콕이 ‘뜨거운 도시’라면 치앙마이는 ‘조용한 안식처’에 가깝다. 처음에는 그냥 태국 북부의 한 도시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이곳에 발을 디디고 나니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는 걸 깨달았다. 카페와 사원, 마켓과 작은 골목까지. 치앙마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선물하는 도시였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세 가지 장소에서 치앙마이의 매력을 가장 선명하게 느꼈다. 도이수텝 사원, 님만해민 거리, 그리고 치앙마이 야시장. 빠른 속도로 소비하는 여행이 아니라, 내 호흡과 리듬으로 천천히 음미하는 여정을 보내고 싶다면 이 도시만 한 곳은 없을 것 같다.
도이수텝 사원: 산 위에서 바라본 도시의 풍경
치앙마이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도이수텝 사원(Wat Phra That Doi Suthep)이다. “도이수텝을 보지 않고 치앙마이를 보았다고 하지 마라”는 말이 있을 만큼, 이곳은 상징적인 장소다.
아침 일찍 툭툭을 타고 산길을 올라가는 동안, 도시의 풍경이 점점 멀어지고 구름 사이로 햇살이 스며드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도착하자마자 긴 계단이 눈앞에 펼쳐졌다. 계단 양쪽으로 뱀 모양의 나가 조각이 구불구불하게 뻗어 있었고, 그 장식만 봐도 이곳이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사랑받아왔는지 느껴졌다.
계단을 올라 사원에 들어서면, 황금빛 첨탑이 눈부시게 빛난다.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불탑은 치앙마이의 신성함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사원 주변에는 향을 피우며 기도하는 현지인들이 있었고, 여행자들은 조용히 그 풍경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다. 나는 잠시 벤치에 앉아 바람 소리를 들었다. 바쁘게 흘러가던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내 마음도 이곳에 머무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도이수텝의 전망대에 서면 치앙마이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붉은 지붕과 푸른 숲이 어우러진 풍경은 마치 그림처럼 고요했다. “이곳을 보기 위해 여기에 왔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님만해민 거리: 트렌디한 감성과 로컬의 조화
치앙마이의 또 다른 매력은 사원과 전통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님만해민(Nimmanhaemin Road)은 요즘 2030세대가 가장 좋아하는 동네 중 하나다. 힙한 카페, 감각적인 편집숍, 예술적인 분위기가 골목마다 스며 있다.
내가 머문 숙소도 님만해민에 가까운 부티크 호텔이었다. 체크인하자마자 커피 향이 진하게 풍기는 로비가 반겨주었고, 그 순간부터 “이 여행이 분명 다를 거야”라는 예감이 들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곳곳에 예쁜 카페가 숨어 있다. 나는 ‘Ristr8to’라는 스페셜티 카페에 들어가 라떼를 주문했다. 바리스타가 라떼 아트를 완성해 컵을 내밀어 주는 모습이 마치 공연 같았다. 이곳에서 커피 한 잔을 천천히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은 치앙마이에서 가장 호사스러운 여유였다.
카페뿐 아니라 작은 갤러리, 북숍, 로컬 디자이너 숍이 이어진다. 그중 한 가게에서 발견한 핸드메이드 가죽 카드지갑은 내 여행의 작은 기념품이 되었다. 방콕과는 다른, 더 느긋하고 감각적인 공기가 이 거리에는 흐르고 있었다.
밤이 되면 님만해민 거리는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루프탑 바에 올라 치앙마이의 야경을 바라보며 마신 맥주 한 잔은 여행의 피로를 단숨에 씻어주었다. 네온사인과 따뜻한 조명이 만들어내는 밤 풍경이 이 도시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치앙마이 야시장: 향기와 색으로 채운 밤
치앙마이에서 밤을 즐기기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야시장에 가는 것이다. 특히 일요 야시장(Sunday Walking Street Market)은 규모와 분위기 모두 특별했다. 일요일 저녁, 올드타운 거리가 통째로 시장으로 변한다.
시장 초입에 들어서면 수공예품부터 악세서리, 그림, 로컬 스낵까지 없는 게 없다. 골목마다 다른 음악이 흘러나오고, 작가들이 직접 만든 작은 예술품들이 줄지어 있었다. 나는 작은 캔버스에 그린 치앙마이 풍경화를 하나 샀다. 언젠가 집에 걸어두면 이 밤이 생각날 것 같았다.
시장 음식은 선택의 폭이 끝이 없었다. 구운 닭꼬치, 망고밥, 코코넛 팬케이크까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맛있어 보였다. 특히 태국 전통 국수를 파는 작은 포장마차에 앉아 뜨끈한 국물을 한 숟갈 떠먹는 순간, 이 도시의 따뜻함이 몸에 스며드는 것 같았다.
야시장은 단순히 쇼핑과 식사가 아니라, 치앙마이 사람들의 삶을 가까이서 들여다볼 수 있는 무대였다. 사람들의 웃음소리, 흥정하는 목소리, 달콤한 디저트 냄새가 한데 섞여 여유롭고 행복한 밤을 완성했다.
느리게 걸을수록 선명해지는 치앙마이의 매력
치앙마이에서의 며칠은 내게 ‘속도를 늦추는 연습’ 같은 시간이 되었다. 도시가 주는 고요와 따뜻함, 트렌디한 감각과 전통의 조화,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은 자유.
여기서는 빨리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있었다. 느리게 걸을수록 더 많은 것을 보게 되고, 더 깊이 이 도시를 이해할 수 있었다.
다음에 또 치앙마이에 오게 된다면, 그때는 더 오래 머물며 매일 아침 같은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밤마다 야시장을 천천히 걸으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다. 치앙마이는 그렇게, 여행자의 마음에 오래 남는 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