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켓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가장 먼저 ‘바다’를 떠올린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내가 만난 푸켓은 바다에만 머무는 곳이 아니었다. 활기찬 시장과 조용한 사원, 해 질 녘 루프탑에서 바라본 노을까지. 이 섬은 낮과 밤, 관광과 휴식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곳이었다. 언제나 떠들썩한 파통 비치부터 로컬의 숨결이 느껴지는 올드타운, 그리고 바다 위에서 만난 자유까지. 그 모든 순간이 푸켓이라는 섬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바다가 들려준 푸켓의 낮과 밤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시죠.
파통 비치: 낮에도 밤에도 깨어있는 해변
푸켓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먼저 파통 비치(Patong Beach)로 향했다. 공항에서 차로 1시간 남짓, 도착하자마자 푸켓의 대표 해변이 눈앞에 펼쳐졌다. 부드러운 모래와 끝없이 이어지는 파도, 그 위로 반짝이는 태양. 푸켓에 왔다는 사실이 가장 먼저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낮의 파통은 에너지가 넘쳤다. 바나나 보트, 패러세일링, 제트스키까지 해양 액티비티를 즐기는 사람들로 해변이 가득했다. 처음에는 한적한 곳을 찾고 싶었지만, 이 활기찬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마음이 동했다. 수영복을 입고 해변 의자에 누워 바닷바람을 맞으며 망고 스무디를 마시는 순간, 머릿속이 완전히 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오후가 지나면서 해변에는 조금씩 석양이 내려앉았다. 파라솔 아래에 앉아 노을을 바라보니, 햇살에 지친 몸도 서서히 식어갔다. 해가 완전히 지면, 파통 비치의 또 다른 얼굴이 시작된다. 바로 방라 로드(Bangla Road)다.
밤이 되면 방라 로드는 형형색색의 네온사인과 음악으로 가득 차는 푸켓의 대표적인 번화가다. 처음엔 이 거리가 조금 낯설게 느껴졌지만,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묘하게 자유롭고 흥겨운 공기에 나도 함께 스며들었다. 클럽과 바에 앉아 칵테일을 마시는 사람들, 음악에 몸을 맡긴 여행자들, 거리 공연을 구경하는 사람들까지. 누구나 각자의 방식으로 밤을 즐기고 있었다.
파통 비치는 낮과 밤의 에너지가 완전히 달랐다. 그리고 그 모든 모습을 한 번에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이곳만의 매력이었다.
푸켓 올드타운: 시간을 걷는 작은 골목
푸켓이 단순히 해변만으로 유명하다고 생각한다면, 푸켓 올드타운(Phuket Old Town)을 꼭 걸어봐야 한다. 이곳은 과거 무역의 중심지로 번성했던 곳으로, 유럽풍과 중국풍이 섞인 독특한 건축양식이 가득하다. 알록달록한 색으로 칠해진 건물과 좁은 골목길이 마치 영화 세트장 같았다.
아침 일찍 올드타운에 도착해 느린 속도로 골목을 걷기 시작했다. 카페, 갤러리, 기념품 가게들이 모여 있는 탈랑 로드(Thalang Road)부터 둘러보았다. 가장 먼저 들어간 작은 카페는 이곳의 대표적인 ‘카페 호핑’ 명소 중 하나였다. 나무 테이블에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통유리 창으로 골목을 바라보니, 바쁜 일상과는 아주 멀리 떨어진 기분이 들었다.
올드타운의 매력은 건물만이 아니다. 시장과 사원이 한데 섞여 있어, 잠깐 골목을 돌면 완전히 다른 풍경이 나타난다. ‘주말 야시장(Phuket Sunday Night Market)’이 열릴 때면 이 거리가 더욱 활기를 띠는데, 나는 저녁 무렵 도착해 다양한 로컬 음식과 기념품을 구경했다. 두 손 가득 쇼핑백이 늘어났지만, 어쩐지 더 사고 싶어지는 물건이 계속 나타났다.
골목 어귀에서 만난 조용한 사원에 들어서니, 밖의 소란스러움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향냄새와 작은 종소리가 마음을 가라앉혔다. 올드타운은 해변의 화려함과 달리, “조용히 여행하는 기쁨”을 알려주는 장소였다.
제임스 본드 아일랜드 투어: 바다 위에서 마주한 자유
푸켓에 오면 한 번쯤은 꼭 해봐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제임스 본드 아일랜드(James Bond Island) 투어다. 영화 ‘007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의 촬영지로 유명한 이 섬은, 사실 이름보다 풍경이 더 인상적이었다.
아침에 선착장에서 보트를 타고 출발했다.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주변의 석회암 절벽이 점점 가까워졌다. 투어 중간에 카약에 올라 동굴을 통과했는데, 깎아지른 벽과 에메랄드빛 물이 만드는 풍경이 마치 다른 세계 같았다. 가이드가 “이곳은 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양 국립공원 중 하나”라고 설명해주었을 때, 그 말이 조금도 과장이 아니라고 느꼈다.
제임스 본드 아일랜드에 도착하니, 유명한 뾰족한 바위가 수면 위에 우뚝 솟아 있었다. 사진으로만 보던 풍경을 직접 마주하니, 여행이 현실이 아니라 영화 속 장면처럼 느껴졌다. 작은 기념품 가게와 코코넛 음료를 파는 상점들이 섬에 있었지만, 그보다 이 풍경에 마음을 빼앗겨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보트 갑판에 앉아 바다를 바라봤다. 바람 소리와 파도 소리만이 들리는 그 순간, 이곳에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켓은 그렇게, 바다 위에서 가장 진한 자유를 선물해주는 곳이었다.
푸켓은 매일 다른 얼굴로 다가왔다
푸켓에서 보낸 시간은 매일 새로운 느낌을 줬다. 같은 해변도 아침과 저녁이 달랐고, 같은 골목도 햇살과 조명이 바뀌면 전혀 다른 풍경으로 변했다.
낮에는 바다에서 마음껏 놀다가, 해가 지면 시장과 골목에서 여유를 즐기고, 밤에는 루프탑에서 바람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모여 나만의 여행기가 되었다.
여행은 결국 “어디에서 머물렀느냐”보다 “어떤 순간을 기억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푸켓은 그 모든 순간이 선명하게 남는 곳이었다. 자유롭고, 따뜻하고, 조금은 낭만적인 시간들.
다음에 다시 오게 된다면, 이번에는 더 오래 머물며 푸켓의 숨은 골목까지 천천히 걸어보고 싶다. 낮과 밤의 경계가 사라지는 그곳에서 또다시 나만의 이야기를 쌓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